판결노트

“수리는 세입자 부담” 특약이 있어도 — 대법원이 그은 수선의무의 선 (94다34692)

정리·발행 2026.08.26 읽기 7분
판결노트

“수리는 세입자 부담” 특약이 있어도 — 대법원이 그은 수선의무의 선 (94다34692)

핵심 요약
  • 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판결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임대차 수선 분쟁의 기준으로 쓰입니다.
  • 기준선 — 임차인이 별 비용 없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면 임대인은 수선의무가 없습니다.
  • 그러나 수선하지 않으면 계약에서 정한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정도라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집니다.
  • 핵심은 두 번째 판시입니다. “수리는 임차인 부담”이라는 특약이 있어도, 범위를 명시하지 않았다면 소규모 수선만 면제됩니다.
  • 대파손의 수리, 건물 주요 구성부분의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같은 대규모 수선은 여전히 임대인 부담입니다.
  • 즉 계약서 한 줄로 보일러 교체나 누수 배관 공사까지 세입자에게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전세나 월세 계약서에는 “시설물 수리는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문구가 흔히 들어갑니다. 그리고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배관에서 물이 새면, 집주인은 그 문구를 가리킵니다. 이 한 줄이 어디까지 힘을 갖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오래전에 정리해 둔 판결이 있습니다.

1. 출발점 조문 — 임대인은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진다

민법 제623조 (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도하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계약이 살아 있는 내내 쓸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 줄 의무입니다. 임대차는 물건을 한 번 넘겨주고 끝나는 매매와 이 지점에서 갈립니다.

사건 개요
· 사건번호: 대법원 94다34692 (보증금등·건물명도등)
· 선고: 1994년 12월 9일
· 참조조문: 민법 제623조
· 쟁점: ①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지는 파손·장해의 정도 ② 수선의무 면제특약에서 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그 특약을 어디까지로 해석할 것인지

2. 첫 번째 판시 — 어느 정도부터 임대인 몫인가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임대인은 목적물을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므로,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그것이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지만, 그것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차인이 계약에 의하여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로 될 정도의 것이라면 임대인은 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

기준이 금액이 아니라 사용·수익 가능성이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두 가지를 함께 걸었습니다.

  • 임대인이 면제되는 쪽 — 별 비용 없이 손쉽게 고칠 수 있고, 동시에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가 아닐 것. 형광등 교체, 문고리 조임 같은 것이 여기입니다.
  • 임대인이 부담하는 쪽 — 고치지 않으면 계약에서 정한 목적대로 살 수 없게 되는 정도. 난방이 안 되는 겨울집, 물이 새는 천장, 작동하지 않는 화장실이 여기입니다.
“살 수 있느냐”를 물으십시오. 수리비가 얼마인지부터 따지면 결론이 흐려집니다. 판시의 문장은 “계약에 의하여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인지를 묻습니다. 주거용으로 빌렸다면 정상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가가 기준입니다.

3. 두 번째 판시 — 특약의 한계

실무에서 진짜 다툼이 되는 부분입니다. 계약서에 이미 “수리는 임차인 부담”이라고 적어두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임대인의 수선의무는 특약에 의하여 이를 면제하거나 임차인의 부담으로 돌릴 수 있으나, 그러한 특약에서 수선의무의 범위를 명시하고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특약에 의하여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면하거나 임차인이 그 수선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의 수선 등 소규모의 수선에 한한다 할 것이고, 대파손의 수리, 건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등과 같은 대규모의 수선은 이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여전히 임대인이 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문장을 세 조각으로 나눠 읽으면 구조가 분명해집니다.

① 특약 자체는 유효합니다.
“특약에 의하여 이를 면제하거나 임차인의 부담으로 돌릴 수 있으나” — 수선의무 면제 약정을 무효로 본 것이 아닙니다.

② 다만 범위를 안 적었다면 좁게 해석합니다.
“수선의무의 범위를 명시하고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 이 단서가 열쇠입니다. 뭉뚱그린 문구는 소규모 수선까지만 미칩니다.

③ 대규모 수선은 여전히 임대인입니다.
대법원이 예시로 든 세 가지 — 대파손의 수리, 건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그래서 계약서의 그 한 줄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시설물 수리는 임차인 부담”처럼 범위를 특정하지 않은 문구는, 이 판결에 따르면 통상 생길 수 있는 소규모 파손에만 적용됩니다. 보일러 교체, 배관 누수 공사, 구조체 균열 보수 같은 것을 여기에 밀어 넣기는 어렵습니다.

4. 어디까지가 “기본적 설비부분”인가

판결은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라고만 쓰고 목록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별 사건마다 다투게 됩니다. 다만 판시의 문언에서 방향은 읽힙니다.

  • “기본적” — 그 집이 주거로 기능하기 위해 없으면 안 되는 설비인지. 난방, 급배수, 전기처럼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들이 여기에 가깝습니다.
  • “교체” — 손보는 수준이 아니라 갈아야 하는 규모인지. 부품 하나 교체와 설비 자체의 교체는 다릅니다.
  • “통상 생길 수 있는” — 반대편 기준입니다. 사용하다 보면 으레 생기는 소모·파손이면 특약이 미칩니다. 소모품 성격이 강할수록 임차인 쪽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수선의무의 원인이 임차인에게 있는 경우는 이 논의와 별개입니다. 임차인이 부주의하게 망가뜨린 것이라면 임대차 종료 시 원상회복 문제로 다뤄집니다. 통상적인 사용에 따른 자연스러운 마모와 임차인의 과실로 인한 훼손을 가르는 문제는 원상회복과 통상손모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5. 집주인이 안 고쳐줄 때 쓸 수 있는 것

수선의무가 임대인에게 있다는 것이 확인돼도, 실제로 고쳐주지 않으면 그다음이 필요합니다. 민법이 세 갈래를 두고 있습니다.

① 차임 감액 청구 — 민법 제627조 제1항
“임차물의 일부가 임차인의 과실없이 멸실 기타 사유로 인하여 사용, 수익할 수 없는 때에는 임차인은 그 부분의 비율에 의한 차임의 감액을 청구할 수 있다.”

② 계약 해지 — 민법 제627조 제2항
“그 잔존부분으로 임차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때에는 임차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③ 필요비 상환 청구 — 민법 제626조 제1항
임차인이 임차물의 보존에 관한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임대인에게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해야 할 수선을 임차인이 대신 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순서를 지키십시오. 먼저 서면으로 수선을 요구하고 기록을 남긴 뒤, 그래도 응하지 않을 때 위 카드를 씁니다. 통보 없이 임의로 큰 공사를 해버리면 필요비였는지를 두고 다시 다투게 됩니다. 문자나 메일 한 통이 나중에 가장 강한 증거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수리는 임차인 부담”이라고 적혀 있으면 다 제가 내야 하나요?

아닙니다. 대법원 94다34692 판결은 수선의무의 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특약이라면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은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의 수선 등 소규모의 수선에 한한다고 보았습니다. 대파손의 수리, 건물 주요 구성부분의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같은 대규모 수선은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합니다.

Q. 어느 정도부터 임대인이 고쳐줘야 하나요?

기준은 금액이 아니라 사용·수익 가능성입니다. 별 비용 없이 손쉽게 고칠 수 있고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라면 임대인의 의무가 아니지만, 수선하지 않으면 계약에서 정한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정도라면 임대인이 부담합니다.

Q. 보일러가 고장 났습니다. 누가 부담하나요?

난방 설비가 작동하지 않아 정상적인 거주가 어려운 정도라면, 판시의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다만 단순 부품 교체 수준인지, 설비 자체를 갈아야 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수선의무 면제특약 자체가 무효인가요?

무효는 아닙니다. 대법원도 “특약에 의하여 이를 면제하거나 임차인의 부담으로 돌릴 수 있으나”라고 하여 특약의 효력을 인정합니다. 다만 범위를 명시하지 않았다면 소규모 수선까지만 미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Q. 집주인이 계속 안 고쳐주면요?

민법 제627조 제1항에 따라 차임 감액을 청구할 수 있고, 남은 부분으로 임차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제2항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이 대신 지출한 보존 비용은 제626조 제1항의 필요비 상환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Q. 1994년 판결인데 지금도 유효한가요?

이 판결이 해석한 민법 제623조는 그대로이고, 수선의무의 범위와 면제특약의 한계에 관한 기준으로 지금도 인용됩니다. 다만 개별 사건의 결론은 설비의 종류와 파손 정도 등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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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판결(보증금등·건물명도등), 민법 제623조·제626조·제627조(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본 글은 판결의 요지를 정리한 것으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건의 결론은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대한법률구조공단(132)이나 변호사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