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장에 잘못 들어온 돈을 써버리면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리한 횡령죄 (2017도17494)
내 통장에 잘못 들어온 돈을 써버리면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리한 횡령죄 (2017도17494)
-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 없이 내 계좌로 돈이 들어왔다면, 나는 그 돈을 송금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 따라서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합니다. “내 통장에 들어왔으니 내 돈”이 아닙니다.
- 이 법리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들어온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그때 피해자는 송금한 피해자입니다.
- 다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사기죄만 성립하고 별도의 횡령죄는 되지 않습니다.
- 사기범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습니다. 범죄로 보낸 돈을 형법으로 지켜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돈이 입금됐는데 그냥 써도 되나요.” 온라인에서 가장 자주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답을 정리해 둔 판결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쓰면 안 되고, 쓰면 형사 문제가 됩니다.
1. 사건 — 통장을 빌려주고, 들어온 돈을 뽑았다
· 사건번호: 대법원 2017도17494 (사기방조·횡령)
· 선고: 2018년 7월 19일, 전원합의체 판결
· 피고인들은 자기 명의로 개설한 예금계좌의 접근매체를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양도했습니다.
· 그 계좌로 피해자가 속아서 돈을 송금했고, 피고인들은 별도로 가지고 있던 접근매체를 이용해 그중 일부를 임의로 인출했습니다.
· 검사는 주위적으로 사기범의 재물을, 예비적으로 사기피해자의 재물을 횡령했다고 기소했습니다.
· 원심은 사기방조와 횡령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쟁점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계좌 주인은 사기의 공범이 아니라고 판단됐고, 돈은 사기범이 시킨 것이지만 계좌에는 계좌 주인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 돈은 누구의 것이고, 이를 뽑아 쓴 행위는 누구에 대한 횡령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2. 출발점 — 착오송금 법리
대법원은 먼저 원인 없이 송금된 돈에 관한 기본 법리부터 세웁니다.
송금의뢰인이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자금을 송금·이체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계좌명의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계좌명의인은 수취은행에 대하여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 이와 같이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계좌명의인이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보관하는 지위”입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만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형법 제355조 제1항). 대법원은 판시 [1]에서 그 위탁관계가 계약이 없어도, 사무관리·관습·조리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고, 다만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를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3. 보이스피싱 피해금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
통장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논리는 일관됩니다. 돈의 주인은 여전히 송금한 피해자이고, 계좌 이름이 내 것이라는 사정만으로 그 돈이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4. 두 개의 예외 — 공범인 경우, 그리고 사기범에 대한 관계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② 사기범에 대한 관계에서는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 접근매체를 넘겨받은 사람은 예금반환청구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예금 자체를 취득한 것이 아니고, 사기범과 계좌명의인 사이의 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예외의 이유가 인상적입니다. 대법원은 그렇게 보면 “범행으로 송금·이체된 돈을 사기범에게 귀속시키는 결과가 되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범죄로 모인 돈을 형법이 지켜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들에게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피해금 일부를 임의로 인출한 행위는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5. 의견이 갈렸던 지점
전원합의체답게 결론에 이르는 길에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 별개의견(대법관 김소영·박상옥·이기택·김재형) — 계좌명의인과 피해자 사이에는 위탁관계가 없고, 접근매체를 넘겨받은 사람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입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송금된 돈은 단순 착오송금과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 반대의견(대법관 조희대) — 송금인에 대해서도, 접근매체를 넘겨받은 사람에 대해서도 모두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다수의견이 판례로 확립됐으므로 현재 기준은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입니다. 다만 이런 반대 논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결코 상식만으로 자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6. 실제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모르는 돈이 들어왔을 때 일단 뽑아두는 것, 다른 계좌로 옮겨두는 것, “주인이 나타나면 주겠다”며 쓰는 것. 모두 영득 의사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판결의 문언 그대로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입니다.
해야 할 일은 반대로 단순합니다. 손대지 말고 은행에 알리는 것입니다. 송금인이 착오로 보낸 경우라면 은행의 반환 절차로 정리되는 것이 보통이고, 그것이 막히면 송금인은 예금보험공사의 착오송금 반환지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예금자보호법 제39조의2는 공사가 착오송금 수취인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채권을 매입해 소송 외의 방법으로 회수하도록 정하고 있고, 제26조의4는 그 재원인 착오송금반환지원계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통장이나 카드, 인증서를 남에게 넘기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입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들도 시작은 “계좌를 빌려준 것”이었습니다. 접근매체 양도는 그 자체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고, 계좌가 지급정지되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3조의2에 따라 전자금융거래제한대상자로 지정돼 상당 기간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막힐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모르는 돈이 입금됐는데 그냥 쓰면 어떻게 되나요?
횡령죄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은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해 계좌명의인은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Q. 통장을 빌려줬을 뿐인데도 처벌되나요?
사기 자체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그 계좌에 들어온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임의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됩니다. 같은 판결이 명시적으로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접근매체를 넘긴 행위 자체도 별도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Q. 계좌 주인이 사기 공범이면 횡령죄도 함께 성립하나요?
아닙니다. 공범이라면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인출은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결의 판시입니다.
Q. 사기범의 돈을 가로챈 셈이니 사기범에 대한 횡령은 아닌가요?
대법원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접근매체를 넘겨받은 사람은 예금반환청구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예금 자체를 취득한 것이 아니고, 사기범과의 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Q.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송금했다면 어떻게 돌려받나요?
먼저 송금한 은행에 알려 수취인에게 반환을 요청하게 하고, 수취인이 응하지 않으면 예금보험공사의 착오송금 반환지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예금자보호법 제39조의2는 공사가 부당이득반환채권을 매입해 소송 외의 방법으로 회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와 별도로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청구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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